우리는 종종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네가 뭔데 나를 판단해”라고 항변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하고요. 이렇게 사람에 대한 판단은 갈등과 고통을 만들어 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단 행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저 역시 종종 습관적인 판단 행위로 갈등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가족들에게 더 자주 실수를 합니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친구 등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은 그동안 내가 보았던 여러 번의 경험을 기준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미리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판단 행위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어떤 기준을 차용합니다. 그 기준은 앞에서의 예와 같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만들어지거나 또는 권위적인 이론이나 어떤 신념이나 사상 또는 종교적 가르침에서 가져옵니다. 후자의 경우 문제는 그러한 기준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소수자를 무턱대고 비난하는 종교인들이나, 인종적인 차별, 출신 지역에 대한 경멸 등은 대표적인 판단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판단은 단순히 그릇된 기준을 적용하여 발생하는 오류일까요? 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융의 분석 심리학에서 ‘사고’(Thinking)는 네 가지 주요 심리 기능(사고, 감정, 감각, 직관) 중 하나입니다. 논리와 객관적인 기준을 사용하여 대상의 의미와 관계를 이해하려는 합리적인 기능이죠. 진정한 사고는 힘이 들고, 에너지를 써야 하며, 복잡한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융의 관점에서 '판단'(Judging)은 종종 사고의 어려운 과정 없이 내려지는, 성급하고 비합리적인 결론을 의미합니다. 사고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복잡성을 회피하고 단순화된 결론(판단)을 내림으로써 내적/외적 불안정성을 빠르게 해소하려 합니다.
융이 말하는 진정한 사고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기준을 사용하여 대상의 의미와 연관성을 이해하려는 합리적 기능입니다. 이는 고도의 집중력과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고된 작업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하며, 모호한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자아(Ego)를 위협하는 복잡성이 등장하면, 우리의 마음은 이 수고를 회피하고 불안정성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단순화된 결론, 즉 판단이라는 손쉬운 단축키를 선택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진지한 지점으로 한 걸음 나가 봅시다. 성급한 판단 뒤에는 대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그림자가 작동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게으르다', '이기적이다', '비합리적이다'라고 쉽게 단정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서 인정하지 않았거나 억압했던 충동이나 결핍을 그들에게 투사(Projection)합니다. 타인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일시적인 도덕적 우월감을 제공하며, 자신의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을 직시해야 하는 사고의 노력을 회피하게 해줍니다. 융은 외부에 집중된 판단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하고 용기 있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심리적 치유는 단순한 판단에서 복잡한 사고로 이행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이 상황의 객관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 모든 대립하는 요소들은 어떻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는 모호성을 견디는 능력을 기르는 소중한 우리의 영혼(Psyche)이 성장할 공간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타인에 대한 평가를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향한 객관적인 질문을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급한 도피처였던 판단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이해의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