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두려운 사람은 상처받을 가능성 앞에서 서성입니다. 그 두려움이 가리키는 과업은 관계의 단절감을 감당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연결감이 주는 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두 경우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단절감과 부담감을 감당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실패가 두려운 사람의 과업은 성공을 향한 돌진이 아니라,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의지와 자기 신뢰를 기르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늘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지점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가장 깊이 성장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두려움의 가장 큰 해악은 두려워하는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새출발을 할 때 흔히 더 나은 계획, 더 단단한 의지, 더 밝은 목표를 세우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화려한 결심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해 온 감정과 정직한 만남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카를 융의 이 문장은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피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나를 두렵게 하는가?”
융은 두려움을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성장의 방향을 가리키는 표식으로 보았습니다. 두려움은 잘못된 길에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삶을 바꾸어 낼 변화의 에너지와 그 방향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두려움을 없애야 할 장애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회피하고, 미루고, 합리화합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걸 고민한들 뭐가 달라져?” “나는 다른 일로도 너무 바빠.” 그러나 여전히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누를수록 다른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사소한 일에 과민해지며, 엉뚱한 선택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것은 융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마주하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는 신호이며, 또한 이것은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보내는 지혜의 메시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치유는 두려움을 몰아내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두려움의 의미를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할까? 이 두려움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지키려고 생긴것일까? 그리고 이 두려움 너머에는 어떤 내가 기다리고 있을까?
새해를 맞아 모든 두려움을 없애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올해 나는 나의 두려움 한 가지와 정직하게 마주해 보겠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완벽한 용기가 아니라, 도망치지 않겠다는 태도로 시작하면 됩니다.
Task를 ‘과업’으로 번역하지 않고 ‘길’로 번역한 이유를 이제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두려움,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다음 한 단계의 성숙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곳은 가능성의 자리이며, 그곳에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나의 삶, 아직 사용하지 않은 나의 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당신의 마음 어딘가에 반복해서 떠오르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밀어내지 말고 조용히 물어봅시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여기까지 따라왔니?” 이 질문으로 인해 두려움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길잡이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치유도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