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과 금 시장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고 일어나니 수억 원을 벌었다는데, 성실히 일하며 일상을 지켜온 이들은 스스로를 ‘벼락거지’라 부르며 비탄에 빠집니다. 의문이 듭니다. 이 투기 시장에 참전하지 않고 근검과 절약 그리고 저축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 초라함과 자괴감은 정말 개인의 문제일까요? 어떤 이는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한 주식에서 크게 손해를 보고 가족 관계까지 위태로워지고,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위험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융의 통찰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벼락거지가 된 박탈감, 투기 손실로 인한 좌절감은 단순히 개인의 투자 감각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넘어 ‘집단무의식’이라는 심층 심리의 원형적 주제가 왜곡되어 나타난 결과입니다.
가장 구체적인 예가 ‘영웅 원형’의 왜곡입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성취하고 승리할 것을 강요하는 영웅 원형을 집단적으로 숭배합니다. 이 원형이 건강하게 작동할 때는 삶의 동력이 되지만, 투기 시장의 광풍과 결합하면 독이 됩니다. ‘수익률’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개인은 ‘승리하고 획득하는 영웅’이 되지 못했다는 수치심에 시달립니다. 성공한 극소수만을 인간으로 대접하는 집단무의식적 흐름이 개인의 무의식에 침투하여, 성실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패배’로 규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경제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류 생존의 위협인 '기후 위기'를 마주하는 개인의 자세에서도 우리는 같은 비극을 목격합니다. 전 지구적 탄소 배출 시스템의 변화나 기업의 구조적 혁신이 선행되어야 할 거대한 집단적 과제 앞에서, 사회는 교묘하게 그 책임을 개인의 도덕성으로 전가합니다. 분리수거를 완벽히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일회용품을 사용하며 느끼는 자기 비하 등 이른바 기후 불안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의 두려움을 자기 검열 방식으로 내면화한 결과입니다. 집단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지구적 돌봄의 실패가 개인의 일상에서 무력감과 강박이라는 '개인적 증상'으로 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돌봄과 수용을 상징하는 집단무의식인 ‘위대한 어머니 원형’이 사라진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근원적인 고립감을 느낍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품이 나의 노후와 생존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집단적 두려움은 개인 무의식 속에서 ‘유기 불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벼락거지가 되었다는, “나만 뒤처진 것 같다”라는 절규는 사실 이 시대가 집단적으로 잃어버린 ‘보호와 연대의 원형’에 대한 간절한 갈구인 셈입니다.
일확천금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우리를 괴롭히는 그 자괴감은 우리 시대의 병든 욕망과 집단적 그림자가 개인 무의식에 투사된 것이라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집단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오인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나’라는 감옥에서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삶은 시대의 무의식과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이 목소리는 정말 나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병든 시대가 내 입을 빌려 내뱉는 비명인가? 이 질문을 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모두 즐거운 설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