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잠언을 좀 더 의역하면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혼돈 속에는 하나의 우주가 있고 모든 병리에는 숨겨진 순리가 있다.” Dis/order를 병/순리로 번역한 이유가 있습니다. Personality Disorder(성격장애), Mood Disorder(기분장애)와 같이 Disorder는 정신병리학에서 장애 또는 병리를 진단할 때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즉, 융은 병리에도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삶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예기치 않은 사건, 무너진 관계, 흔들리는 확신 속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잃어버립니다. 그럴 때면 세상은 마치 하나의 혼돈처럼 보이죠. 모든 게 흩어지고 질서가 사라진 듯한 그 순간, 융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지금은 혼란스럽더라도 여기에는 당신만 알 수 있는 하나의 다른 세상이 있어요. 심지어 어떤 정신적인 장애를 겪고 있다 해도 거기에도 오직 당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어요.”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이 혼돈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자기(Self)라는 중심 원리가 끊임없이 질서를 만들어 간다고 보았습니다. 즉, 혼란은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의 과정이며, 무질서는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는 전야(前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돈을 피하려 하지만, 삶은 그 속을 통과할 때 비로소 진화합니다.
마음의 위기 또한 이와 같습니다. 불안, 상실, 슬픔 같은 감정은 표면적으로는 ‘무질서’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나’를 다시 구성하려는 무의식의 비밀스러운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상담의 현장에서도 종종 이런 장면이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붕괴 속에 새로운 가치관, 다른 관계의 가능성, 혹은 잊고 있던 자신과의 만남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혼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재탄생의 패턴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절망의 순간은 어쩌면 내면의 우주가 다시 구조를 짜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의 삶이 불안정하다면, 그것으로 혼란스러워하며 통증을 없애려 애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혼란함, 혼돈은 의미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가 태어나기 직전의 진통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니 좀 견뎌 봅시다.
“삶이 흩어지는 순간에도, 마음은 여전히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 간다. 혼돈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안에 당신의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고 있다. 오직 자신에 대한 불신이 그것을 가로막는다. 그저 자신 안에 고요히 머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