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그렇지만 융의 이 잠언 역시 약간 의아함을 자아냅니다. 법을 지키는 것이 거짓말이라니요. 우리는 법을 어기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관습을 따르는 것을 성숙한 사회인의 덕목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융은 바로 그 준수 행위가 거짓말의 가장 교묘한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융의 분석심리학 이론에는 페르조나(Persona)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원래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저마다의 가면을 씁니다. 법을 지키는 시민, 신앙을 지키는 종교인,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도 이 가면을 쓴 상태입니다. 이 가면들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가면이 얼굴이 되어버릴 때 시작됩니다.
융은 이것을 페르조나의 팽창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면이 인격 전체를 삼켜버리는 상태.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가면이 곧 자신이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법과 관습은 진실을 보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실을 숨기는 방패가 됩니다.
한국 검찰은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었음에도 스스로를 법의 수호자라 말합니다. 절차를 지켰다고, 법에 근거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거짓말입니까? 형식적으로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융이 경고하는 것은 바로 그 형식적 정당성입니다. 법을 지켰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가한 고통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릴 때, 그 법 준수 행위는 가장 정교한 거짓말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감지조차 할 수 없는, 융의 표현대로라면 '아주 교묘한so subtle'한 거짓말 말입니다.
태평양 너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타국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하고 압박을 가하면서 법적 권한에 근거한다고 말합니다. 타국의 대통령을 체포하면서도 정당한 법의 집행이라고 합니다. 타국과 뜬금없이 전쟁을 벌이고, 고급 정보를 독점한 채 합법적인 주식 투자로 천문학적 소득을 올립니다.
그런데 융은 이것이 거대 권력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내면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나의 신념이 옳다는 확신으로 관계를 경직시킬 때도 있지요.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원칙대로 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원칙이 삶을 숨 막히게 만들고 있음에도 모르는 체합니다. 가면을 지키기 위해 존재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융은 페르조나의 팽창이 일어나는 이유를 그림자(Shadow)라는 대칭 에너지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안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 즉 취약함, 두려움, 욕정, 모순, 수치스러운 모습 등이 있습니다. 그림자가 짙을수록 가리기 위한 가면은 더 두꺼워집니다. 법과 원칙이라는 가면은 바로 그 그림자를 보지 않기 위한 방어입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내 안의 불편한 진실은 더 깊이 묻힙니다.
융이 이 문장을 남긴 것은 법을 어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관습을 버리라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이것을 묻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지키고 있는 그 법과 원칙이, 진실을 향한 용기입니까, 아니면 진실로부터의 도피입니까. 가면이 얼굴을 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