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와 자극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가져야 행복한지, 어떻게 살아야 성공하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이어야 '정상'인지를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우리는 늘 밖을 향해 눈을 돌리고, 타인의 기준이나 세상의 ‘평균’에 나를 맞추려 애씁니다. 그러나 문득,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공허함이나 불안을 느낀 적이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신화 시지프스의 주인공처럼 결과가 뻔한 일상을 매일매일 힘겹게 꾸려 나가는 이 무의미함. 아무리 노력해도 언젠가 무슨 일이 벌어져 이 일상이 한 번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로 인해 무언가 더 그럴듯한 성취를 만들려 하거나, 이 삶을 위협하는 불안의 요소를 찾아 없애려 한다면 결국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는 자꾸 타자에게, 외부로 향하게 됩니다.
외부 세계에 집착하는 것을 칼 융은 ‘'꿈꾸는 상태”라 표현합니다. 이는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 끊어진 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화가 나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도 우리는 종종 그 원인이나 해답을 외부로부터 찾으려 합니다. “도대체 그 인간은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힘들거나 화가 날 때,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라는 말 대신 "내 안에서 무엇이 이런 감정을 만들어내는가?"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세요. '왜'는 자책을 낳지만, '무엇'은 탐구와 인식을 낳습니다.
“도대체 그 인간은 왜 그러는 거야”라는 질문을 “그의 무슨 말이 나를 자극했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화인가, 두려움인가, 위축감인가?"로 바꿔 봅시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내게 벌어졌지?”라는 질문은 “이 일은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나는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나,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로 자신에게 집중하는 질문으로 변경해 봅시다.
비가 잦고, 일교차가 크고, 단풍을 볼 겨를도 없이 어느새 가을이 지나갑니다. 스산한 일기에 공허함이나 두려움이 더해지면 자칫 침울해질 수도 있습니다. 칼 융이 말했습니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내 바깥에도 없다” 즉, 내 안에 답이 없다면 세상 어디에도 답은 없다는 뜻입니다. 삶이 허무할수록, 두려울수록, 자신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글ㅣ이승욱 대표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