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cannot change anything unless we accept it. Condemnation does not liberate, it oppresses.”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꾸려 한다면 먼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난은 해방시키지 못한다, 억압할 뿐이다.” - 카를 융
자신에 대한 비난이 남기는 것
날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우리의 삶은 종종 '변화'라는 숙제 앞에 놓입니다. 게으름을 고치고 싶고, 감정을 더 잘 조절하고 싶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변화를 간절히 바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해집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또 실수했어, 한심해." 이러한 비난(Condemnation)은 우리의 변화 의지를 북돋기보다는 심리적인 족쇄가 됩니다.
융은 바로 이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비난은 해방시키지 못하고 억압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순간, 우리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깊은 단절을 만듭니다. 우리는 지금의 나를 적대시하게 되고, 변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나 자신과의 싸움에 허비하게 됩니다. 이 싸움은 끝이 없으며, 결국에는 심리적 피로와 억압만을 남깁니다.
수용(Acceptance)은 체념이 아닙니다 융이 말한 '수용(Acceptance)'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처럼 낙담과 체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변화를 위한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내가 게으르다는 사실을 수용한다는 것은, "나는 영원히 게으를 거야"라고 체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 지금 나는 이런 이유로 게으름을 선택하고 있구나. 현재의 내 모습은 이렇구나"라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입니다. 현실에 대한 깊은 존중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문제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용을 위해서 한가지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해의 자세입니다.
- 비난의 에너지: "나는 게으르니까 당장 일어나야 해!" (자기혐오와 강압적 명령)
- 수용의 에너지: "나는 지금 게으름을 피우고 있어. 내가 이렇게 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이 게으름 뒤에는 어떤 피로와 두려움이 있을까?" (이해와 해결책 탐색)
수용은 에너지를 전환시킵니다. 나를 억압하는 비난의 힘을, 나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바꾸어 줍니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예술'을 학습합시다 자신을 수용하는 것은 '나쁜 점을 좋게 포장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흙 속에 묻힌 씨앗처럼, 지금의 불완전함 속에 미래의 가능성이 숨어 있음을 인정하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존중입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족쇄를 풀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의 삶에는 진정한 변화를 위한 해방감이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부터 비난을 멈추고, 자신과 화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글ㅣ이승욱 대표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