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삶의 고통을 오래 통과해 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정확히 고통과 진보에 관한 고찰이라는 것을 압니다.
고통의 얼굴은 저마다 다릅니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일 수도 있고, 몸이 겪어 내는 통증일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이거나 벗어나기 힘든 경제적 궁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을 한 고통의 밑바닥에는 놀라울 만큼 공통된 감정이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외로움입니다. 그것도 그저 곁에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 아니라, 아무도 이 고통을 대신 겪어 줄 수 없고, 아무도 이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이 고통을 낱낱이 다 말할 수 없다는, 처절한 외로움입니다.
융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 냅니다. "더욱이 우리는 완전한 버림받음과 고독의 상태에서만 비로소 우리 자신의 본성 안에 있는 조력의 힘을 경험한다." 누구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고통 앞에 서면,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완전히 혼자인 자리에서, 스스로도 몰랐던 힘과 그동안 쌓아 온 경험을 최대한 끌어모아 고통을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 냅니다. 그 통로는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납니다. 어떤 이에게는 예술로, 어떤 이에게는 일과 성취로, 어떤 이에게는 사유로, 또 어떤 이에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통로를 통과해 낸 마음은 더 이상 고통 이전의 마음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마 융이 말한 심리적 진보일 것입니다.
니체는 사유로 그 통로를 냈습니다. 병으로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하숙집을 전전하며 극심한 고립 속에 살았던 그는, 그 고독을 철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융이 말년의 오 년을 오직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세미나에 바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융은 그 책에서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무의식의 힘과 씨름하며 끝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는 음악으로 그 통로를 냈습니다. 청력을 잃어 가던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까지 고려했다는 유서까지 쓴 바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게 된 뒤에 쓰인 후기 현악 사중주들과 9번 교향곡은, 그가 이전에는 결코 닿지 못했던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매독 진단을 받고 죽음을 예감하며 살아야 했던 슈베르트는, 생의 마지막 몇 해 동안 가장 깊은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24번 곡 거리의 악사는 소멸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합니다.
고흐는 회화로 통로를 냈습니다. 그의 그림을 "광기가 천재성을 낳았다"는 식으로만 읽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그 누구에게도 다 전할 수 없었던 고통에 캔버스를 선사하는 의지를 지속했습니다. 생레미(Saint-Rémy) 요양원에서 그려진 「별이 빛나는 밤」은 광기의 산물이 아니라, 홀로 견뎌야 했던 밤을 그가 발견한 통로를 통해 바깥으로 꺼내 놓은 결과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니체도 베토벤도 아닙니다. 하지만 외로움을 통과한 그들의 삶의 구조는 똑같이 평범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작동합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상실을 홀로 통과한 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게 된 사람을, 실패를 오래 곱씹은 끝에 전혀 다른 길을 찾아낸 사람을, 가끔씩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융의 문장이 옳다면, 그 외로움은 없애야 할 무엇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광산 같은 동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힘이 가득한 그런 곳 말입니다.